너, 그리고 나 사랑

연애를 잘 한다는 게 뭘까. 갑자기 그런 의문이 들었다. 십 여 년 간 사랑을 하고, 더 알 것이 없다고 생각하다가도 또 다른 깨달음이 온다. 알고 또 알아가도 여전히 알 수 없는 것 천지인 것이 인간, 인생인가보다.

우리는 서로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나는 나의 세계, 너는 너의 세계. 그렇게 서로의 색을 존중하며 나란히 걷는다. 가끔은 함께 색을 섞어보기도 하고 그리고는 다시 나답게 파랑, 너답게 빨강, 그렇게 가는 거다. 나란히 가는 연애,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에 종속되지 않는 연애, 나란한 사랑, 믿고 존중하는 사랑.

당신이라는 사람, 지상에서 그 유일한 하나의 '당신'이라는 인간, '당신'이라는 세상, '당신'이라는 지구.
당신이라는 한 사람의 몸을, 미지의 별을 연구하는 학자처럼 공부하고 싶다. 당신이라는 지구 위에 솟은 풀 한 포기를 연구하는 마음으로 당신 몸의 털끝 하나까지 떨리는 마음으로 정성껏 애무하고 싶다.

시간 잡담

시간은 상대적이다.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는 시간은 이천년처럼 길다.
가늠할 수 없는 시간 속, 나는 흡사 인류의 역사를 다시 쓰는 사람처럼 고뇌하고 되짚어보고 인생을 길게 펼쳐 놓는다. 한숨을 쉬고 신음하고 입술을 깨문다. 산다는 게 뭘까, 산다는 게 뭘까. 인간이 아니었으면 하지 않았을 고민을 하고 질문을 던진다. 산다는 게 뭘까.

인간으로, 생식기가 아닌 가슴으로 사랑을 한다. 인간이라는 작은 뇌, 편협한 마음으로는 다른 종의 '마음'을 헤아릴 수가 없다. 그리하여 인간이라서, 아프게 사랑한다, 라고 이기적인 말을 던져 본다. 그 감정이 이기적인 이유는, 그게 결국 살아가는 마음을 아름답게 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름답다. 나는 사랑에 빠졌다. 나는 이천년을 이틀이라는 시한부로 잘라본다.

죽을 것처럼, 죽을 것처럼, 까맣게 죽어버릴 것처럼
비극과 희극으로 얼버무려 규정할 수 없는 장르로, 맵고 달콤하고 씁쓸하고 진하게
끝이 어디인지도 모를 우주의 끝으로 달려갈 수 있을 것처럼 나는
사랑한다,
사랑한다.
이초 후에 죽어도 아무런 후회가 없을 것처럼,

사랑한다.

사람, 사랑 잡담

한 사람을 몇 개의 단어나 카테고리로 규정지을 수 없다. 사랑도 그렇다. 보이는대로, 느끼는대로 믿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는다. 알고 있는데, 보이는데, 느껴지는데도 자꾸만 모르는 척 안 보이는 척 투정을 부리게 된다. 보이는대로 믿자. 분석하고 많이 생각하려고 들면 안 된다. 그럴 필요도 없다.
갑자기 그 말을 나에게 짚어주고 싶었다. 눈을 감고 없는 길을 만들지 말고, 보이는 길을 걷자고.
단순하고 솔직하게.

빨간 립스틱 꾸밈

빨간 립스틱은 도발적이고 섹시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 빨간 립스틱은 '도발'보다 '우울'이다. 립스틱의 색깔은 얼굴의 표정과 기분을 감춘다. 얼굴의 옷이라고 하면 맞겠다. 사실 모든 화장이 그렇지만 내가 유독 립스틱 사랑이 유별나서 더 그렇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스모키 아이 메이크업도 나쁜 여자와 상처받은 여자의 얼굴을 동시에 갖고 있다. 강하고 진한 것은 어쩌면 연약함을 감추기 위한 무엇일까.
이러 저러한 해석을 떠나, 내가 유독 빨간 립스틱을 애용하는 시기는, 마음의 불안이나 우울, 감정의 복잡함을 감추기 위함이다.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거울을 보면, 걱정이 없어 보인다. 자신감 있어 보이고 강해 보인다. 아무래도 괜찮다, 라는 자기 최면 같은 효과를 가진다. 일부러라도 고개를 꽂꽂히 하고 눈을 내리 깔게 된다. 빨간 입술이 좋으면 좋다고, 싫으면 싫다고 말할 것 같다. 애매하고 흐지부지한 것은 별로라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은 없다고 말할 것 같다.

걱정없이 걱정이 많은 날들이다. 애매하고 흐지부지한 길이 엿가락처럼 길게 주욱 늘어진 기분이다.
그래도 그 엿가락을 핥으면서 인생이 달콤하다, 라는 자기 암시를 해 본다.



치킨과 Bye Bye Blackbird 음악

어릴 적 부모님이 심한 부부싸움을 한 적이 있었다. 엄마는 동생과 나를 데리고 집 근처 치킨집에 가셨다. 그리고는 치킨을 시켜 놓고 우리가 먹는 것을 가만히 지켜 보았다. 나는 어렸고 동생은 더 어렸다. 아마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영문도 모르고 맛있게 치킨을 먹고 있을 때, 우리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엄마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진한 슬픔과 진한 사랑을 섞으면 무슨 색일까. 아마도 극한 상황까지 생각하셨던 것 같다. 먹으면서도 어쩌면 이게 엄마와의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감정은 너무 버거웠고 치킨은 맛있었다. 울어야할지 웃어야할지 몰랐다. 슬프지만 맛있었고 맛있었지만 슬펐다.

가끔 진한 우울이 온다. 우울함이 조금 가라앉았을 때 듣는 마일즈 데이비스의 Bye Bye Blackbird는 실컷 울고 나서 먹는 치킨 맛이랄까. 괜찮다, 괜찮아, 하면서 트럼펫 소리가 등을 다독여주고 피아노 소리가 눈물을 닦아준다. 그리고 생각한다. 음악과 맛있는 음식이 있어 다행이라고. 괜찮다, 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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