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는 일 사랑

사람을 잊을 수 있나.
영화 '이터널 선샤인(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에서는 어긋난 연인, 사랑을 잊는 게 힘들어 기억을 지운다. 결국 지우고자 하는 마음과 간직하고자 하는 마음이 충돌한다.

사람을 잊을 수 있나.
지나간 연인들을 돌아보면 사람보다 장소나 냄새, 분위기가 남는다. 정말 내가 그 사람들과 마주 앉아 있었나, 그들의 입술 위에 내 입술을 겹쳤었나, 그들 앞에서 옷을 벗고 날 것이 되었었나, 비현실적인 느낌이 든다. 그게 바로 잊혀졌다는 건가. 시간은 모든 것을 해결한다. 시간은 기억을 멀리 보내 희미하게 하고 나를 늙게 하고 나를 죽게 한다. 시간은 모든 것을 지우고 만들고 없앤다.

당신을 잊었다고 말하는 쳇 베이커, 당신과 같은 이름을 들을 때나 당신과 같은 웃음 소리를 들을 때를 빼고는 당신을 잊었다고 자신한다. 나는 잘 지낸다, 당연히 당신없이도 잘 지낸다. 반어, 마음 아픈 반어에 이어 너무 바보같다, 고 자책하는 쳇 베이커는 죽었다. 애쓰지 않아도 잊고 애쓰지 않아도 시간은 간다. 요새 자주 삶이 작은 박스 같다. 시간이란 어떤 모양의 선일까. 시간이 기억을 멀리 보내 희미하게 하지만, 엉덩이에 매달아 놓은 끈에 매달려 시간을 거슬러 따라오는 추억이나 사람이 있다.

사람을 잊을 수 있나.
잊기 싫으면 잊지 않을 수 있다. 의지는 시간을 버리고 시간을 이긴다.
당신이 나를 잊지 않는다면, 언젠가 엉덩이에 매달아 놓은 보따리를 같은 시간 위에 함께 풀 수 있을 테다.



정착, 떠돌이 잡담

한 곳에 머물러 사는 삶과 평생 돌아다니는 삶.

지난 밤, 자려고 눈을 감았다가 퍼뜩 든 생각이다. 그 질문을 아주 오래 전, 누군가에게 받았을 때도 나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도 굳이 선택해야 한다면 평생 돌아다니겠다고 답했다. 그 대답의 이면에는 '어차피 한 번 사는 삶'이라는 문장이 숨어 있다. 이곳 저곳 돌아다니면서 내 한번 뿐인 삶, 그 삶의 눈을 다양한 경험들로 채우는 것도 나쁘지 않지, 그랬다.
마음은 정착하고 싶은데 몸은 떠돌고 싶다. 이런 저런 충돌이 많은 시기이다. 툭하면 꿈에서 누군가가 나를 죽이려고 쫓아오고, 그런 일이 한 두번이 아니라 나는 꿈에서, '또 죽이려고 쫓아오네'하고 습관적으로 어슬렁 도망친다. 그렇게 아침에 눈을 뜨면 마치 내가 나의 적이라도 된 것처럼 또 아침이네, 아직 살아 있구나 한다. 우울증, 그런 건 아니다. 그냥 무료함이랄까. 바퀴를 굴리다보면 바퀴에서 탈출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다른 바퀴라도 굴려보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인가보다. 지루하고 무료하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나. 그러니 사람들이 어느 즈음 되면 부지런히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그런 삶을 일구어가나보다. 어찌되었건 그게 순리지.
현대, 순리에서 벗어난 일들은 비단 인간의 삶 뿐만이 아니다. 돌아다니고 싶다, 라고 생각하지만서도 문화 깊숙히 들어가면 또 모르겠지만 겉으로 봤을 때는 죄다 매한가지로 같아지고 있는 게 세계 도시의 풍경이다. 맥도날드에 zara, H&M, 스타벅스, 기타 등등, 아마도 더욱 더 같아지겠지. 세계화, 다양성, 그런 말은 의미를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하는 말이 되었다. 국적과 인종을 논하고 가르고 구분하고 그런 촌스러운 일은 앞으로 더 촌스러워질 테지.

떠나고 싶어졌다. 세계의 대도시나 사막, 밀림, 그런 모험 말고 산, 바다, 그런 곳으로. 작은 마을 마을들을 헤매다가 구멍가게에서 맥주 한 캔을 따 마시고 허름한 국밥집에 가서 아침을 해결하고 평화로운 무표정으로, 마음도 무표정으로, 그냥 나무 곁으로 스치는 바람소리나 들으면서.




Sailing, George Benson 음악

진짜가 좋다.
진짜 체온, 진짜 손가락, 목소리,  진짜 음악, 감정.
진짜라고 말은 해도 정작 진짜로 안 오는 것들이 있다. 그게 진짜로 안 오면 가짜인 거다. 적어도 나에게는 가짜다. 내가 아니면 아닌 거다. 가차없이 해고다. 그게 바로 내가 나라서 갖는 특권이랄까. 내가 안 느껴지면 아닌 거지. 난 종교도 싫고 책도 영화도 그림도 가끔 싫다. 진짜로 만져지고 진짜로 몸으로 다가오는 쾌감. 예술이 어쩌구 저쩌구 침 튀기며 떠들어도 피부를 통과해 전율로 오지 못하면 눈, 망막 위에 표면적인 아름다움으로 남는다. 그것도 절반의 성공이겠지만.

이 분의 손가락으로 퉁겨지는 기타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갑자기 sailing이 듣고 싶었다.
술 파도 타던 바다의 남자, 곰 생각도 나고.

조지벤슨은 너무 따뜻하다.

눕고 싶다.
마당이 있는 집, 햇빛이 그린 사각형 위에 누워서 음악을 듣고 쓸데없는 생각들을 하고 싶다.
 
아침이다.



인공눈물 잡담

눈화장을 거의 하지 않는다. 가끔 눈이 허전해 보일 때 눈 가장자리에 라인만 살짝 올려준다. 눈화장 뿐 아니라 화장품을 많이 쓰지 않는다. 파운데이션 류는, 남들이 바르는 것을 보면 마법같아 구경하기는 재미있다. 나보고 바르라고 한다면 몸에 맞지 않는 속옷을 우겨 넣는 느낌일 것만 같아 싫다. 더 나이 들면 화장의 마법으로 가리고도 싶겠지만. 립스틱 외에는 화장이라고 할 것이 많지 않고 있어도 잘 안 쓴다. 뭐든 '덜' 하는 게 정답이라고 믿고 있기도 하고, 올 초에 피부 트러블이 살짝 생겼을 때, 화장품을 일단 중지하고 자기 전 아무 것도 안 바르고 자 버릇했었다. 신기하게도 두 달 동안 없어지지 않던 트러블이 일주일만에 빠르게 사라지는 걸 보고, 인공적인 것, 기능성도 좋지만 가끔은 모든 것에서 쉬어주는 것도 좋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정말 가끔 하는 눈화장인데도 컨디션이 안 좋은 시기에 맞아 떨어지면, 전에 없이 안구건조증이 온다. 뭐든 쑥쑥 소화시키는 남동생은, 어릴 때 내가 '소화가 안 된다'라는 말을 하면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겪어보지 않았으니 그게 어떤 느낌인지 뇌에 다가오지 않는 거다. 나도 그랬다. 안구가 건조하다, 눈이 뻑뻑하다? 말로만 들으면 으으 불편하겠다, 그런 정도였다. 막상 겪어보니 이런 거였구나 싶다. 일거리는 앞에 있는데, 걷고 있는데, 보고 있는데, 그냥 눈을 스윽 감고 싶어진다. 내 탓이 아닌데, 눈꺼풀이 말을 듣지 않는다.

인공눈물.
나는 '인공'이라고 하면 일단 겁이 난다. 그것도 눈에 직접 넣는다니. 촌스럽지만 나는 그렇다.
일단 겁이 났지만 도저히 견딜 수 없어 할 수 없이 사서 곧바로 눈에 넣어봤는데 찌릿. 짜릿한 쾌감이 느껴졌다. 오, 이게 뭐지 하면서 눈을 깜빡깜빡거리니 마치 목마른 화초에 물을 준 것처럼 어딘가의 갈증이 스윽 풀리면서 짜릿짜릿. 인공눈물 넣으면서 쾌감 느끼는 변태 같은 느낌이 들어 주위를 둘러봤다. 인공눈물과 함께 눈을 껌뻑거리면서 옅은 신음이라도 뱉을 것 같았으니 스스로 변태의문이 들었던 게 당연하다. 인공눈물, 조준을 잘못해서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른다. 그러고보니 '진짜 눈물'을 흘리며 울어 본 게 언제였나 싶다. 문제는 눈화장이 아니라 감정이었나. 웃는 것도 좋지만 가끔 울어주면 마음이 시원해지는데. 뭐, 당분간은 인공의 힘으로 울어야겠다. 인공눈물..이것 참 물건일세.


반쪽 사랑

흔히들 애인, 동반자를 '반쪽'이라고 칭한다. 반쪽. 나의 반쪽. 너는 나의 반쪽.

반쪽이 되려면 나를 반으로 나누어야 한다. 나의 반은 없는 셈 친다. 긍정적인 말도 부정적인 말도 아니다. 어차피 두 개의 뭔가가 합쳐지려면, 물리적으로나 화학적으로나 무언가가 사라지고 무언가를 얻는 꼴인 거다.

반쪽을 찾으려고 애쓰는 일은 나의 반을 내어 줄 준비, 나의 반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얘기다. 아무런 포기없이 사랑을 찾는 일은, 그리고 그 사랑을 이끌어가는 일은 이기적이다. 관계를 위해 나는 아무 것도 포기하지 않고 너만 포기한다. 나는 다 갖고 있고 싶으니까 네가 네 몸을 쭈그려서 내 옆, 작은 자리에 앉아라.

그래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무슨 일이든 그렇지만.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부모가 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원칙적으로는 그렇지만 그런 준비의 끝이 어디 있을까 싶다. 요는, 자식이든 연인이든 어떤 인간관계를 시작하든 준비가 필요하다는 거다. 나를 포기할 준비, 열어 둘 준비, 기다릴 준비, 기타 등등의 투명한 준비.

이제껏 주욱 짧든 길든 연애를 해 오다가 잠깐 갓길에 차를 세우고는 퍼뜩 깨달은 사실. 나는 아직 그럴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거다. 차를 보니 기름도 넉넉치 않고 바퀴 상태도 별로다. 두 사람이 타기엔 차는 비좁고 아직 혼자 하는 드라이브, 혼자 가고 싶은 곳도 많다.  그렇다고 나란 사람이 사랑이나 섹스없이 살 수 있는 사람도 아닌데, 그 준비라는 게 언제 준비될 지 알 수도 없고. 문득 돌아보니 이래저래 빨갛고 퍼런 사랑을 했던 것 같은데 머리가 크면서 지혜나 잡생각을 얻으며 생각해보니 준비 된 인간관계 말고는 시간 낭비하기가 싫어지는 거다. 

사랑이라는 게 이렇게 복잡했던가.
눈 뜨고 깨닫고 보니 쉽게 어떤 관계도 시작할 수 없을 것 같아 외로운 날들이 길어질 것 같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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